외할머니 + small talk

갑자기
외할머니가 너무 보고싶어 엉엉 울었다.

철들고 나서는
명절 때나 겨우 만나는 사이였는데...

까탈스런 입에 맞지 않는 친가를 뒤로 하고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간 외가에서
(그 작은 도시에서.조금 많이 걸으면 갈 수 있었다)
외할머니의 방에는 가구가 얼마 없었다.

할머니는 갑자기 찾아온 손주들에게
애호박을 썰어 주먹으로 꾹꾹 눌러가며
전을 부쳐주셨다.
그건 내 평생 먹어본 가장 맛있는
잊을 수 없는 호박전이었다.

다음날 엄마 아빠와 함께 외가를 찾아도
그렇게 밥 반찬이 달고 비린내 없이 편했다.
잠자리마저 편했다.
나와 동생은 명절마다
외가에 가기만을 기다렸다.
친가보다 훨씬 좁은 집이었지만 그랬다.

말년에 당신의 뜻대로 혼자 지내셨다는 얘기를 듣고
주제넘게 이모 부부를 원망했던 게 기억난다.
그러나 친아들보다 더 세세히 장례를 챙기던
이모부도 기억한다.

한글도 모르는 할머니셨지만
아들을 명문대에 보내셨고 (딸을 교육해야 한다는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이었다)
맞벌이 하는 이모네와 손주들을 내내 건사하셨다.
그러다 지치면 부산 큰딸네에 머물다 가시기도 했다.

난 타지에 나와 일하고 있어 뵙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겐 애틋하기만 할 뿐
원망할 구석이 없었던 외할머니다.

4살 터울인 동생이 태어날 무렵
난 외가에 맡겨졌다
그때 외가는 엄마 이모가 젊은시절을 보낸
그야말로 옛날 집이었다.

쓸데없이 구비구비 높이 올라가야 했던 길
쓸데없이 넓은 잔디 정원
대문 앞의 뒤틀린 큰 나무와 그 비탈 아래쪽에
어린 눈에 신기한 구조의 집에 살던,
때때로 외할머니가 나를 인사시키곤 했던 먼 친척들
미혼이었던 이모와 이모가 보여준 텃밭과 우물
무서웠던 쫑
무서웠던 화장실
야무치게 뽈아먹는다고 칭찬하셨던 아이스바
밥상에 자주 올라오곤 했던 우럭 구이
철이 돌아오면 털게 찜과 가리비 찜

할머니
왜 증손주들도 못 보고 가셨어요
왜 그리 고향과 너무 많이 떨어진 곳에서
혼자 그렇게 가셨어요
용돈도 몇 번 못 드렸는데

갓 사회초년생 월급 떼어
엄마에게 선물한 금반지가 어느 날
할머니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던 걸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할머니 뿌렸다는 양지바른 곳
찾아뵙지 못해서 미안해요

나의 외할머니의 며칠간의 행방불명 끝 소천이
십여년이 흐른 후에도
마흔 넘은 손주에게 이토록 사무치는데
하물며 한 집에 살던 가족이
어쩌면
자식이

언제 어찌 죽었는지 모르는 이들의 마음은
차마 감히 헤아릴 수 없다

돌아보면 아직 젊었던 나의 엄마가
허리가 아프다고 누워있을 적
몇 날이고 머무르시며 약초를 찧던 할머니를 생각한다
늬 엄마 다리가 저리 약해서 무슨 일을 하겠냐 하시던 할머니를 기억한다

그 때 우리집엔 2층 옥상 키를 훌쩍 넘는
무화과나무가 흐드러졌다

시간이 흘러 나의 엄마는
정원이 없는 아파트에 사는 내 아이들의
외할머니가 되었다





편히 잠드소서 + small talk











진짜 범죄자들은 고개 빳빳이 쳐들고 다니는데
왜 당신께서 이렇게 허망하게 가셔야 하나요.
당신께 누가 오명을 씌우려 하나요.
당연한 결정과 죽음으로 포장하려는
짐승보다 못한 것들의 만행 잊지 않겠습니다.

평생 약자들의 인권을 위해 싸우고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이 정권을 잡은 동안에도
세월호를, 촛불을 수호해 주신 당신을
차마 이렇게 빨리 보내드리지 못하는 제 마음 대신
당신께서 지켜주신 세월호 유가족분의 메시지를
그저 대신 전합니다.

열한번째 5월 23일 + small talk



아직도
노무현의 시대는
몇 번이나 더 와야 할지 모른다.



편히 지내고 계시는지요.

생전에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살펴드리지 못한
죄책감이 5월의 눈부심에 또 하나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하지만 잊지 못하는 아픔은
우리를 깨어 있게 하는 이유가 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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