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 중간 리뷰 + afterwords

더 크라운, 미스터 션샤인 다시보기 끝나고 나니
볼 게 없었다

그래서 고른 나빌레라
솔직히 많이 느슨하고
개연성도 내 기준 너무 부족한데…
원로배우들 연기력으로 다 커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인환 배우님의 도전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나의 시어머니를 연상시키는 나문희 배우님
(말투가 너무 똑같음. 단 내 시어머니는 더 착하심)
그 분조차
남편이 발레 하는 걸 반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차마 백퍼센트 공감하지 못했지만
그런 눈물나는 연기를 보여주신 거 아닐까 싶다

자식들 역할 맡은 배우들도 마찬가지였겠다 싶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던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송강 배우 피지컬은 영재 발레리노 못지 않으나
연기력을 떠나
근육이 너무너무 ^^;; 무용수의 것이 아니라
볼 때마다 깨는 걸 어쩌라고…
(일반적인 시청자가 아닌 점 인정한다)
여튼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참 많다.

젊은(?) 배우들 중에는 막내아들 역할을 맡으신
조복래 배우님.
이 분 분량이 많지는 않은데도
그 무심한 연기는 너무 가슴에 들어왔다.
어찌 그리 잘 아세요…?

아아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의 연기력은 언제 나오는가
내가 아직 4화까자밖에 못 봐서 그런가?

발레 소재만 아니라면 솔직히
지금이라도 그만 봐야 하는데..

그만 봐야 하나..





요즘 꽃들 + small talk
























































늘 불안감에 한쪽 귀퉁이가 젖은 듯한 일상이
꽃 같지 않아서 더 꽃에 집착하나 싶다
비록 찰나라 할지라도
눈앞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 좋다




+
우리집 아네모네를 사진 찍어가신
엄마가 그리신 그림





외할머니 + small talk

갑자기
외할머니가 너무 보고싶어 엉엉 울었다.

철들고 나서는
명절 때나 겨우 만나는 사이였는데...

까탈스런 입에 맞지 않는 친가를 뒤로 하고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간 외가에서
(그 작은 도시에서.조금 많이 걸으면 갈 수 있었다)
외할머니의 방에는 가구가 얼마 없었다.

할머니는 갑자기 찾아온 손주들에게
애호박을 썰어 주먹으로 꾹꾹 눌러가며
전을 부쳐주셨다.
그건 내 평생 먹어본 가장 맛있는
잊을 수 없는 호박전이었다.

다음날 엄마 아빠와 함께 외가를 찾아도
그렇게 밥 반찬이 달고 비린내 없이 편했다.
잠자리마저 편했다.
나와 동생은 명절마다
외가에 가기만을 기다렸다.
친가보다 훨씬 좁은 집이었지만 그랬다.

말년에 당신의 뜻대로 혼자 지내셨다는 얘기를 듣고
주제넘게 이모 부부를 원망했던 게 기억난다.
그러나 친아들보다 더 세세히 장례를 챙기던
이모부도 기억한다.

한글도 모르는 할머니셨지만
아들을 명문대에 보내셨고 (딸을 교육해야 한다는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이었다)
맞벌이 하는 이모네와 손주들을 내내 건사하셨다.
그러다 지치면 부산 큰딸네에 머물다 가시기도 했다.

난 타지에 나와 일하고 있어 뵙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겐 애틋하기만 할 뿐
원망할 구석이 없었던 외할머니다.

4살 터울인 동생이 태어날 무렵
난 외가에 맡겨졌다
그때 외가는 엄마 이모가 젊은시절을 보낸
그야말로 옛날 집이었다.

쓸데없이 구비구비 높이 올라가야 했던 길
쓸데없이 넓은 잔디 정원
대문 앞의 뒤틀린 큰 나무와 그 비탈 아래쪽에
어린 눈에 신기한 구조의 집에 살던,
때때로 외할머니가 나를 인사시키곤 했던 먼 친척들
미혼이었던 이모와 이모가 보여준 텃밭과 우물
무서웠던 쫑
무서웠던 화장실
야무치게 뽈아먹는다고 칭찬하셨던 아이스바
밥상에 자주 올라오곤 했던 우럭 구이
철이 돌아오면 털게 찜과 가리비 찜

할머니
왜 증손주들도 못 보고 가셨어요
왜 그리 고향과 너무 많이 떨어진 곳에서
혼자 그렇게 가셨어요
용돈도 몇 번 못 드렸는데

갓 사회초년생 월급 떼어
엄마에게 선물한 금반지가 어느 날
할머니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던 걸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할머니 뿌렸다는 양지바른 곳
찾아뵙지 못해서 미안해요

나의 외할머니의 며칠간의 행방불명 끝 소천이
십여년이 흐른 후에도
마흔 넘은 손주에게 이토록 사무치는데
하물며 한 집에 살던 가족이
어쩌면
자식이

언제 어찌 죽었는지 모르는 이들의 마음은
차마 감히 헤아릴 수 없다

돌아보면 아직 젊었던 나의 엄마가
허리가 아프다고 누워있을 적
몇 날이고 머무르시며 약초를 찧던 할머니를 생각한다
늬 엄마 다리가 저리 약해서 무슨 일을 하겠냐 하시던 할머니를 기억한다

그 때 우리집엔 2층 옥상 키를 훌쩍 넘는
무화과나무가 흐드러졌다

시간이 흘러 나의 엄마는
정원이 없는 아파트에 사는 내 아이들의
외할머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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